먼나라 이야기 192

하와이 여행기 4 (커피팜 투어, 12/6)

김선우 마른 잎사귀에 도토리알 얼굴 부비는 소리 후두둑 뛰어내려 저마나 멍드는 소리 멍석 위에 나란히 잠든 반들거리는 몸 위로 살짝살짝 늦가을 햇볕 발 디디는 소리 먼길 날아온 늙은 잠자리 채머리 떠는 소리 멧돌 속에서 껍질 타지면 가슴 동당거리는 소리 사그락사그락 고운 뼛가루 저희끼리 소곤대며 어루만져 주는 소리 보드랍고 찰진 것들 물속에 가라앉으며 안녕 안녕 가벼운 것들에게 이별 인사하는 소리 아궁이 불 위에서 가슴이 확 열리며 저희끼리 다시 엉기는 소리 식어 가며 단단해지며 서로 핥는 소리 도마 위에 다갈빛 도토리묵 한 모 모든 소리들이 흘러 들어간 뒤에 비로소 생겨난 저 고요 저토록 시끄러운, 저토록 단단한, 오늘은 커피팜 가기로 한 날. 정은이네 아이들이 너무 일찍은 힘들것 같아 10시 체험을 ..

먼나라 이야기 2023.12.18

하와이 여행기 3 (푸우 호누아 오호 나우나우 국립역사공원, 12/5)

김종제 돌기둥이 결코 아니다 저 밑바닥의 화구(火口)에서 불로 솟아올랐던 마음이 얼음과 부딪혀 찰나(刹那)에 식어서 벽을 뚫지 못하고 그대로 쇠처럼 굳어진 것이다 두 번 다시 부러지지 않을 것이니 별리로 가슴 아픈 이라면 한 번쯤 탐내고 싶은 마음 얻을 육모 방망이다 물 속에 뿌리박힌 심이다 단단한 중심이다 당신을 여기 서귀포 중문의 지삿개 석벽까지 오게 한 것은 저것이 내가 가진 마음이라고 불길을 이겨내고 허리 우뚝 세운 것이 꽃대궁 같지 않냐고 단지 한 사람만 두 발 딛고 설 수 있는 섬 같아서 의심하지 말고 내 마음의 머리 위에 올라서라 그곳에도 꽃이 피고 새 날아와 앉아 있는 것을 부정하지 말아라 생은 가파르고 마음은 깎아지른 듯 해서 절벽을 보여주려는 것이다 물을 딛고 선 저 뜻이 너무 애틋하지..

먼나라 이야기 2023.12.16

하와이 여행기 2 (코나 시내 관광, 12/4)

정호승 지는 저녁해를 바라보며 오늘도 그대를 사랑하였습니다. 날저문 하늘에 별들은 보이지 않고 잠든 세상 밖으로 새벽달 빈길에 뜨면 사랑과 어둠의 바닷가에 나가 저무는 섬 하나 떠올리며 울었습니다. 외로운 사람들은 어디론가 사라져서 해마다 첫눈으로 내리고 새벽보다 깊은 새벽 섬기슭에 앉아 오늘도 그대를 사랑하는 일보다 기다리는 일이 더 행복하였습니다. -언니네 마당의 star fruit, 자르면 별 모양이 나타난다. -아침 산책하기 -아침 식사 한밤중에 깨서 서울 시간을 여기 시간으로 착각. 헌데 해가 안 떠 이상타 했더니 여긴 한밤중이라 다시 자다 일어나기. 오늘 아침에는 일어나 동네 산책하기. 집에서 아래로 내려가니 트레일이라 차가 안 다니는 길이 중간 중간 이어진다. 우리가 차를 타고 나갈 때 왜 ..

먼나라 이야기 2023.12.16

친구만나러 하와이 가기 1 (서울~코나, 12/3)

이옥진 꼬인 곳 바로 놓고 주름진 곳 펴서 차곡히 쌓는다 옷 속에 묻혀 온 고단한 시간의 땀냄새 흙냄새 기름냄새 향기나는 세제로 지우고 보송하게 마른 빨래를 개며 가족의 하루를 가늠해 보는 시간 힘내라 옷 위에 손길 한 번 더 얹는다 올 1월에 가려던 하와이 여행이 비행기표 사다 취소를 했다. 언제 가려나 싶었는데 예숙이가 딸네랑 하와이에 온다고 이왕이면 친구랑 놀고 싶다고 시간을 맞춰 보라고 했다. 명화까지 이젠 백수가 되어 즐거운 마음으로 날을 잡았고 비행기표도 구입했다. 원래 계획은 세일러마가 가고 최박은 동업자랑 1달 정도 간다고 했었다. 헌데 세일러마 남편이 수술을 받게 되어 비행기표 취소 되었고 하와이 간다던 동업자는 네팔을 간다고 해 최종 최박이 비행기표 구입해 셋이 가게 되었다. 봄에 비행..

먼나라 이야기 2023.12.15

9. 요르단에서 집으로 (2/22~23)

최문자 하루 잘 살기란 힘들지요 하루는 하루살이의 전 생애지요 하루살이에게 시한부로 걸린 하루는 사실 하루가 아니지요 사랑하고 꿈꾸고 아이 낳고 투병까지 하는 사람들의 생애지요 삶의 시간은 배고팠지만 하루만 살고도 하루만 더, 하루만 더, 하고 삶을 구걸하지 않는 하루살이 바둥거리지 않고 내리꽂히는 가파른 죽음을 보셨는지요 사람들에게는 없는 하루지요 오늘은 저녁 9시 비행기다. 저녁은 기내식이다. 자연 오늘 일정은 어떻게 하면 공항에 천천히 가나가 숙제가 되었다. 그동안 시간이 부족해 뛰듯 다니던 관광이 오늘은 출발이 11시. 모닝콜도 하지 않는다. 아침 일찍 출발하는 팀을 위해 식사를 8시 넘어 해 달라는 요청. 느지막히 일어나 짐을 정리하고 식당에 가 아침을 먹었다. 눈치껏 늦은 저녁 대신 먹을 음식..

먼나라 이야기 2023.03.09

8. 아, 페트라 (2/21)

이시영 이 밤 깊은 산 어느 골짜구니에선 어둑한 곰이 앞발을 공순히 모두고 앉아 제 새끼의 어리고 부산스런 등을 이윽한 눈길로 바라보고 있겠다 요르단이 영국의 통치를 받다 입헌군주제로 독립했다고 한다. 관광지 입장료가 어마어마하게 비싼데 대부분 왕족에게 돌아간다는 가이드. 오늘 페트라 가는 길이 멀고 출근길 막히기 전에 가야 한다고 일찍 출발. 아침 먹고 출발 하는데 버스 운행 중 일어서면 갈비뼈 부러진다며 시내 나갈 때 까지는 절대로 움직이지 말라고 한다. 페트라 가는길 첫번째 쉬는 곳은 화장실도 들릴 겸 쉬는 곳인데 차도 팔고 화장실은 돈을 내고 이용해야 하는데 분위기가 나름 독특하고 내려다보는 경치가 그만이다. 우리도 내려서 사진 찍고 출발. 두번째 쉬는 곳도 기념품 가게인데 좀 좋아 보이는건 가격..

먼나라 이야기 2023.03.09

7. 갈릴리에서 요르단으로 (2/20)

이영광 안경을 잊어버리고 출근하였다 집으로 돌아갈까, 잠시 망설였지만 간밤 취해서 부딪혔던 골목 귀퉁이가 각(角)을 잃고 편안히 졸고 있는 걸 보고 발길을 돌렸다 길이 뿌옇게 흐렸으므로 무단횡단도 하지 않았다 나의 약시가 담 모서리의 적의를 용서한 덕분일까 새학기 들어 처음 흡족하게 강의를 마쳤다 미운 놈 고운 놈 제각각이던 학생들도 모두 둥글둥글 예뻐 보이고 오늘 따라 귀를 쫑긋 세우고 열중하는 것 같았다 담배를 피워 물고 창 밖을 내다보니 황사 며칠, 서울도 그럭저럭 봐줄 만하다 흐릿해진 풍경 어딘가에 봄 내음이 스며 조용조용 연둣빛으로 옮겨내는 중이다 나는 세상을 너무 자세히 보려 했던 모양이다 살아 있는 것은 모두 어딘가로 번져가는 중이기에 수묵 같은 흔적을 남기는 것이기에 안경 도수가 높아갈수록..

먼나라 이야기 2023.03.09

6. 예루살렘에서 갈릴리로...(2/19)

정건우 아내가 잠든 사이 설거지를 해본다 덩그런 개수대 한중간에 양푼 냄비 바닥부터 층층이 쌓인 식기들 간장 종지는 밥그릇 안으로 파고들고 밥그릇은 국그릇 위에 얹히며 젓가락은 쭈뼛하게 돛대로 꽂힌 채 난파선처럼 기울어 있는 우리 살림밑천들 큰 것은 작은 것을 보듬어 안고 켜켜이 속을 채운 오지랖 질서 해무(海霧) 같은 세제의 거품으로 오염된 생활의 부속을 씻긴다 화단이 내려다보이는 창문 안쪽에 바다가 있었다니 아내는 끼니 후에 난파되는 배의 키를 거두어 해신제를 지내듯 하루 꼭 세 번 이것들을 닦아 진설했구나 수없이 바다에 손을 담그고 절했겠구나 엔진처럼 따뜻한 밥이 식지 않기를 소망하면서 젖은 손을 갑문처럼 여닫아 묵은 바다를 비우고 새 바다를 담으려 하였겠구나 오늘은 일요일이다. 호텔에서 장소를 빌..

먼나라 이야기 2023.03.09

5. 베들레햄, 예루살렘 (2/18)

이상국 늦은 사랑이 내게로 왔다 가장 늦은 사랑이 첫사랑이다 봄여름가을 꽃시절 다 놓치고 언 땅 위에서 나는 붉어졌다 누구는 나를 가리켜 봄이라 하지만 꽃물을 길어올린 건 겨울이다 인색한 몇 올의 빛을 붙들어 온몸을 태운 한 그리움의 실성(失性) 그리워할 누군가가 있는가 지금 그리워해도 되는가 너는 묻지 않았으니 스스로 터져 봄날이 되는 사랑아 아직 얼어붙은 하늘에 뾰루퉁 입 내민 붉은 키스 가장 이른 사랑이 내게로 왔다 오늘은 짐을 싸지 않아도 되는 날이다. 그리고 관광도 일찍 시작해 일찍 끝나 저녁에 여유가 있다는 것. 문제는 안식일이라 트램도 저녁 9시가 넘어야 다닌다던가? 아무튼 오늘 박자매가 빛의 속도로 맨 뒺자리를 차지하게 되었다. 뒷자리에서 맨 먼저 내리는걸 본 사람들이 자꾸 노린다. 우린 ..

먼나라 이야기 2023.03.08

4. 사해에서 예루살렘으로.. (2/17)

김은 머리 위로 보라색 중국영화가 책장을 펴고 날아다녔어 수만 권의 이생과 저생을 알고 있다는 나의 무간도 당신의 요술처럼 장풍은 변함없이 구름을 퉁기고 휘날리는 도포는 하늘에 핏빛 다섯 손가락 수를 놓지 폭포물로 잡아내린 천년여우의 머리카락은 도도하고 불로초와 키스한 앵두빛 입술은 팽팽한 힘줄이 가득해 천도복숭아 가득 열린 벼랑의 그 끝에서 나는 이별하고 당신은 너무 향기롭지 않은 마른 바람을 맞지 찢어져도 불러낼 수 없는, 이미 금이 가버린 재생화면 산산이 부서진 검개의 수만 년 전 밤빛이었어 그런 당신을 주워담고 뒤돌아서던 우물 속 달 그림자 쌍검이 실종된 신선나비와 어깨가 실종된 상사구렁이 끈적끈적하게 묻은 당신과 나의 시큼하고 오랜 이야기들 내 백발 위로 방금 항우의 마지막 검이 날아갔어 바위로..

먼나라 이야기 2023.03.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