굼벵이의 도봉산 종주기 (9/15) ‘발’- 김행숙(1970~ ) 발이 미운 남자들이 있었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아름다운 나의 무용수들. 나의 자랑. 발끝에 에너지를 모으고 있었다. 나는 기도할 때 그들의 힘줄을 떠올린다. 그들은 길다. 쓰러질 때 손은 발에서 가장 멀리 있었다. 마음의 잠은 게으름이어서 야금야금 시간을 갉아먹는다. 그러.. 산행기/2008년 2008.09.16
늦더위 주금산 찾아가다 주글뻔.. (9/7) ‘사이’ -박덕규(1958~ ) 사람들 사이에 사이가 있었다 그 사이에 있고 싶었다 양편에서 돌이 날아왔다 세상에서 어려운 것 중의 하나가 사람들 사이의 관계이리라. 성격이 모나면 모난 대로 어렵고, 둥글면 둥근 대로 어려운 것이 인간관계이니 말이다. 분명한 것은 인간은 홀로 살 수 있는 존재가 아니.. 산행기/2008년 2008.09.08
영등산악회 숨은벽을 찾아가기 (삼각산, 9/6) 내 젊은 방황들 추스려 시를 만들던 때와는 달리 키를 낮추고 옷자락 숨겨 스스로 외로움을 만든다 내 그림자 도려내어 인수봉 기슭에 주고 내 발짝 소리는 따로 모아 먼 데 바위뿌리로 심으려니 사람이 그리워지면 눈부신 슬픔 이마로 번뜩여서 그대 부르리라 - 이성부(58) '숨은 벽' 중 1. 모이는곳: 200.. 산행기/2008년 2008.09.08
무주에서 (7.18~19)-박작가 사진으로 보기 ‘들풀들의 데모’- 류기봉(1965~ ) 이제 그 만! 멈추어 달라고, 들풀들이 일제히 흐느낀다. 오늘은 제초제를 뿌리지 않기로 했다. 포도밭에 하루 해가 저무는 노을이 번집니다. 저 멀리 앞산이 노을빛에 마지막 제 모습을 드러내고 있으면 사는 것도 참 가지가지라는 생각이 듭니다. 아침 포도밭은 젊은 .. 산행기/2008년 2008.09.03
여름 마무리 산행 (삼각산, 8/31) ‘요통(腰痛)을 위한 콘티’ - 채선(1957~ ) 밤사이 누군가에게 휘둘린 자리에 폐허 한 채 들어섰다. 그것의 실체는 꽃대가 주저앉는 마디 마디가 팽팽히 맞서다 소멸해 가는 풍경, 풍경이 진동하는 뜨거운 중심부. 부르르 ㅡ 떨리다 휘모리 같은 신음으로 일어서는 권능의 압박감이여. 몽상에서 독이 자.. 산행기/2008년 2008.08.31
굼뱅이가 1일 2산을? (모락-백운산, 8/24) 길/이생진 가다가 고추밭 허수아비에게 길을 묻는다 자기도 모르니 그대로 가라한다 가다가 산꼭대기 바위돌에게 길을 묻는다 자기도 가다가 길이 없어 이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으니 나보고도 그 자리에 앉으라 한다. 길을 가다가다 제 길을 잃고 나도 가다가다 내 길을 잃고 서로 모르는 길을 가고 있.. 산행기/2008년 2008.08.26
지리, 안개에 숨다 2 (8/17~18) ‘소년 가장’- 최금진(1970~ ) 밤길을 걸어 집으로 가는데 죽은 아버지 부르는 소리 얘야, 오늘은 마을에 제사가 있구나 목구멍이 빨대 같은 풀들이 피 묻은 꽃들을 혓바닥처럼 밖으로 꺼내어놓을 때 빠드득 빠드득 이빨 갈며 풀벌레가 울고 소년의 굽은 어깨 위로 뛰어내리는 나무그림자 귀를 틀어막아.. 산행기/2008년 2008.08.20
지리, 안개에 숨다 1 (8/17~18) ‘저녁은 짧아서 아름답다’ -김종해(1941~ ) 사라져가는 것보다 아름다운 것은 없다 안녕히라고 인사하고 떠나는 저녁은 짧아서 아름답다 그가 돌아가는 하늘이 회중전등처럼 내 발밑을 비춘다 내가 밟고 있는 세상은 작아서 아름답다 지상을 헤매던 울적한 사람, 발자국을 되짚어 집으로 갑니다. 노을.. 산행기/2008년 2008.08.20
언니들과 남한산성 돌기 (8/16) ‘그릇’ - 오세영(1942~ ) 깨진 그릇은 칼날이 된다. 절제(節制)와 균형(均衡)의 중심에서 빗나간 힘, 부서진 원은 모를 세우고 이성(理性)의 차가운 눈을 뜨게 한다. 맹목(盲目)의 사랑을 노리는 사금파리여, 지금 나는 맨발이다. 베어지기를 기다리는 살이다. 상처 깊숙이서 성숙하는 혼 깨진 그릇은 칼.. 산행기/2008년 2008.08.20
놀면 뭐해 산에 가야지? (관악산, 7/21) ‘약속의 후예들’ - 이병률(1967~ ) 강도 풀리고 마음도 다 풀리면 나룻배에 나를 그대를 실어 먼 데까지 곤히 잠들며 가자고 배 닿는 곳에 산 하나 내려놓아 평평한 섬 만든 뒤에 실컷 울어나보자 했건만 태초에 그 약속을 잊지 않으려 만물의 등짝에 일일이 그림자를 매달아놓았건만 세상 모든 혈관 뒤.. 산행기/2008년 2008.07.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