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 지리를 가다 2 허공 -김종삼(1921~ ) 사면은 잡초만 우거진 무인지경이다 자그마한 판잣집 안에선 어린 코끼리가 옆으로 누운 채 곤히 잠들어 있다 자세히 보았다 15년 전 죽은 반가운 동생이다 더 자라고 둬두자 먹을 게 없을까 시인은 소년 시절에 어린 동생을 돌보다가, 한눈을 파는 바람에 잠깐 놓쳐버.. 산행기/2018산행 2018.05.08
봄 지리를 가다 1 (5/4~5) 만남 -이성복(1952~ ) 내 마음은 골짜기 깊어 그늘져 어두운 골짜기마다 새들과 짐승들이 몸을 숨겼습니다 그 동안 나는 밝은 곳만 찾아왔지요 더 이상 밝은 곳을 찾지 않았을 때 내 마음은 갑자기 밝아졌습니다 온갖 새소리, 짐승 우짖는 소리 들려 나는 잠을 깼습니다 당신은 언제 이곳에 .. 산행기/2018산행 2018.05.08
우중 낙남정맥을 가다 (담티재-비실재, 5/6) 전대미문 (前代未聞) - 김경미(1959~ ) 그녀가 떠났다 그가 떠났다 독사진 속으로 구급차가 들어간다 눈동자가 벽에 가 부딪힌다 방석이 목을 틀어막는다 안개가 촛불에 제 옷자락을 갖다 댄다 우편배달부가 가방을 찢어버린다 가로수가 일제히 자동차 위로 쓰러진다 숨을 멈춰도 끊어지지 .. 산행기/2018산행 2018.05.07
철사모 봄 여행 2 (4/21~22) 봄비 - 김소월(1902~34) 어룰없이 지는 꽃은 가는 봄인데 어룰없이 오는 비에 봄은 울어라. 서럽다, 이 나의 가슴속에는! 보라, 높은 구름 나무의 푸릇한 가지. 그러나 해 늦으니 어스름인가. 애달피 고운 비는 그어오지만 내 몸은 꽃자리에 주저앉아 우노라. 소월의 본명은 김정식(金廷湜). 공.. 산 이외.../2018일기 2018.05.02
철사모 봄 여행 1 (4/21~22) 벚꽃 십리 -손순미(1964~ ) 십리에 걸쳐 슬픈 뱀 한 마리가 혼자서 길을 간다 희고 차가운 벚꽃의 불길이 따라간다 내가 얼마나 어두운지 내가 얼마나 더러운지 보여주려고 저 벚꽃 피었다 저 벚꽃 논다 환한 벚꽃의 어둠 벚꽃의 독설, 내가 얼마나 뜨거운지 내가 얼마나 불온한지 보여주려.. 산 이외.../2018일기 2018.05.02
관악산 가기 (4/26) 전대미문 (前代未聞) - 김경미(1959~ ) 그녀가 떠났다 그가 떠났다 독사진 속으로 구급차가 들어간다 눈동자가 벽에 가 부딪힌다 방석이 목을 틀어막는다 안개가 촛불에 제 옷자락을 갖다 댄다 우편배달부가 가방을 찢어버린다 가로수가 일제히 자동차 위로 쓰러진다 숨을 멈춰도 끊어지지 .. 산행기/2018산행 2018.04.26
진달래 만나러 천주산을 가다 (낙남정맥:창원cc-마재고개, 4/15) 병 -기형도(1960~1989) 내 얼굴이 한 폭 낯선 풍경화로 보이기 시작한 이후, 나는 주어를 잃고 헤매이는 가지 잘린 늙은 나무가 되었다. 가끔씩 숨이 턱턱 막히는 어둠에 체해 반 토막 영혼을 뒤틀어 눈을 뜨면 잔인하게 죽어간 붉은 세월이 곱게 접혀 있는 단단한 몸통 위에, 사람아, 사람아 .. 산행기/2018산행 2018.04.18
봄꽃에 취하던 날 시산제 지내기 (낙남정맥, 돌장고개-부련이재, 4/1) 산다화(山茶花) 나무 사이로 -함명춘(1966~ ) 산다화 나무 사이로 오늘도 바람이 불고 있다 불지 않기 위하여 꽃잎을 잡고 꽃잎이 떨어지면 이파리를 잡고 이파리가 떨어지면 가지를 잡으며 뿌리를 향해 가고 있다 바람은 사랑이 어렵다. 그가 불어가면, 꽃잎과 이파리는 그만 떨어지고 만다.. 산행기/2018산행 2018.04.01
낙남정맥 반을 넘다 (큰재-백운산-담티재, 3/18) 몸의 중심 -정세훈(1955~ ) 몸의 중심으로 마음이 간다 아프지 말라고 어루만진다 몸의 중심은 생각하는 뇌가 아니다 숨 쉬는 폐가 아니다 피 끓는 심장이 아니다 아픈 곳 ! 어루만져 주지 않으면 안 되는 상처 난 곳 그곳으로 온몸이 움직인다 몸의 중심은 특정 기관에 있지 않다. 그것은 진.. 산행기/2018산행 2018.03.19
봄이 쳐들어오다 (낙남정맥: 부련이재-큰재, 3/4) 들꽃 언덕에서 -유안진(1941∼ ) 들꽃 언덕에서 알았다 값비싼 화초는 사람이 키우고 값없는 들꽃은 하느님이 키우시는 것을 그래서 들꽃 향기는 하늘의 향기인 것을 그래서 하늘의 눈금과 땅의 눈금은 언제나 다르고 달라야 한다는 것도 들꽃 언덕에서 알았다. 저 언덕에 하느님이 계실까... 산행기/2018산행 2018.03.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