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연휴 여행기1 (10/5) 이런 낭패 -도광의(1941~ ) 오랜만에 고향에 갔다 간밤에 마신 술 탓에 새순 나오는 싸리울타리에 그만 누런 가래 뱉어놓고 말았다 늦은 귀향 길 안쓰런 마음 더해가는 고향 앞에서 나는 또 한 번 실수에 무안해 하는데 때마침 철 늦은 눈이 내 허물을 조용히 덮어주고 있었다 시인은 내 고등.. 산 이외.../2017일기 2017.10.09
가을로 접어든 수도기맥 (산제현-오도산-싸리터재, 10/1) 가을 소묘 -함민복(1962~) 고추씨 흔들리는 소리 한참 만에 에취! 바싹 마른 고추가 바싹 마른 할머니를 움켜쥐는 소리 더는 못 참겠다는 듯 마당가 개도 취이! 마주 보는 주름살 다듬는 세월 할머니가 마당가에 쪼그리고 앉아 고추를 말리고 있다. 잘 익은 붉은 고추에 가을볕을 골고루 발라.. 산행기/2017산행일기 2017.10.04
수도기맥에서 가을의 선물을 받다 (장구재-비계산-산제현, 9/17) 갈대 - 신경림(1936~ ) 언제부턴가 갈대는 속으로 조용히 울고 있었다. 그런 어느 밤이었을 것이다. 갈대는 그의 온몸이 흔들리고 있는 것을 알았다. 바람도 달빛도 아닌 것. 갈대는 저를 흔드는 것이 제 조용한 울음인 것을 까맣게 몰랐다. ―산다는 것은 속으로 이렇게 조용히 울고 있는 것.. 산행기/2017산행일기 2017.09.19
다시 수도기맥으로 (목통령-장구재, 9/3) 먼 곳 -문태준(1970~) 오늘은 이별의 말이 공중에 꽉 차 있다 나는 이별의 말을 한 움큼, 한 움큼, 호흡한다 먼 곳이 생겨난다 나를 조금조금 밀어내며 먼 곳이 생겨난다 새로 돋은 첫 잎과 그 입술과 부끄러워하는 붉은 뺨과 눈 웃음을 가져가겠다고 했다 대기는 살얼음판 같은 가슴을 세워 .. 산행기/2017산행일기 2017.09.04
모락산 가기 (8/26) 알쏭달쏭 소녀백과사전-쇼핑백 -이기인(1967~ ) 가슴이 찢어진 백화점 쇼핑백 두겹 세겹, 스카치테이프를 붙이고 외출하는 날 나 언제쯤 쓸 만한 놈 될까 차곡차곡 큰 거 작은 거 많이 모였네 자취방은 악어처럼 조용하고 쇼핑백은 방을 삼킬 수도 있었네 선물이 빠져나온 쇼핑백 작업복 들.. 산행기/2017산행일기 2017.08.27
비 피해 산청으로 (왕산-필봉산, 8/20) 다음 -천양희(1942~) 어떤 계절을 좋아하나요? 다음 계절 당신의 대표작은요? 다음 작품 누가 누구에게 던진 질문인지 생각나지 않지만 봉인된 책처럼 입이 다물어졌다 나는 왜 다음 생각을 못했을까 이다음에 누가 나에게 똑같은 질문을 한다면 나도 똑같은 대답을 할 수 있을까 나는 시인.. 산행기/2017산행일기 2017.08.21
더위 대신 비를 피하다 (봉미산, 7/16) 여전히 반대말놀이 -김선우(1970∼) 행복과 불행이 반대말인가 남자와 여자가 반대말인가 길다와 짧다가 반대말인가 빛과 어둠 양지와 음지가 반대말인가 있음과 없음 쾌락과 고통 절망과 희망 흰색과 검은색이 반대말인가 반대말이 있다고 굳게 믿는 습성 때문에 마음 밑바닥에 공포를 .. 산행기/2017산행일기 2017.07.16
수도기맥 번외 산행 (가야산. 6/18) 죄인처럼 사는 것–‘바람이 불어’ -김수복(1953~) 사랑의 허리를 뒤에서 껴안아 본 사람은 알지 햇살의 시선으로 꽃을 바라보는 것과 같은. 등 뒤에서 태양이 솟아오르는 것과 같은, 혼자 우는 죄인이 된 반달이 가슴을 비워내는 것과 같은, 그 어디에도 이유가 없다고 한다 모든 사랑 .. 산행기/2017산행일기 2017.06.19
조망과 바람덕분에 행복하여라 (수도기맥, 우두령-수도산-개금마을, 6/4) 산에서 1 -한성기(1923~84) 짐승들과 마주 앉아 나는 저들이 좋아서 어쩌지 못할 때가 있다. 이른 봄날 맑은 하늘이 들어 있는 눈들 짐승들과 마주 앉아 나는 자꾸만 한 숭어리 꽃 같은 빛깔을 어쩌지 못한다. 쓰다듬으면 조금은 떠는 꽃잎 꽃잎…… 조그만 몸뚱아리 속에 가만히 들어와 쉬는 .. 산행기/2017산행일기 2017.06.06
출발, 수도기맥 (지경리-삼도봉-거말산-우두령, 5/21) <초여름> 박태언 온 산이 아래, 중간, 꼭대기 소년 소녀가 가득하다 연하고 가냘픈 피부의 청소년 소녀들이 살랑대며 재잘댄다 푸른 대화로 술렁대고 수런스럽다 위로 뛰고 옆으로 돋고 아래로 뻗는 힘 어디로 튈지 모른다 사이사이 사각대며 키재기를 한다 외로운 빈 하늘 공간에 푸.. 산행기/2017산행일기 2017.05.22